심지어 그 남자는 이 후배도 원래 잘
알던 형 이었답니다. 사귀는 동안에 셋이서 함께 밥도 자주 먹고, 술도
가끔 먹고 그랬다 하더군요.
한 두어 번 여자친구에게 경각심을 준 적이 있었지만, 그녀의 대답은 늘 똑같았습니다. 안심하라고. 오빠도 아는 형 아니냐고. 나에게도 가 족 같은 오빠라고.
분노를 참지 못하는 후배에게 그 XX에게서 연락이 왔답니다. 둘이서 술을 마셨는데 그 친구가 이실직고를 했다더군요.
“사실 네 여자친구를 처음부터 좀 좋아했던 게 사실이다. 하지만 너라는 남자친구가 있었으니 참아야 했고 나도 완전히 연락을 끊을 순 없었다.
친한 오빠인 척 얘길 들어주며, 차근차근 정을 쌓은 건 잘못한 거라고
생각한다. 하지만 너와 헤어진 후에 내가 고백했으니 도덕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잖냐.
그러니 너도 더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.”
이 사례를 듣고 난 후,
남녀사이에 친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
뭐라고 얘기할까요?
“그건 그냥 헤어지고 난 뒤에 두 사람이 가까워 졌을 뿐 아니냐. 사귀는 동안에 그들이 친분을 유지한 게 무슨 문제냐.”
라고 하겠죠. 그럼 이번엔 그 반대파. 그러니까 남녀사이에 친구가 없다고 주장하는
사람들은 분통이 터집니다.
“남자가 하는 얘기 못 들었냐. 애초에
문제가 있었던 거다. 그 XX가 없었다해도 여자의 선택이
지금과 같았을까? 아닐 거다.” 라고 말이죠.
뭐, 저도
쉽사리 결론은 내릴 수 없습니다. 그 여자 분의 속내에 대해선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. 찬성파와 반대파의 논쟁을 보며,
문득 예전에 봤던 친구라는 영화의
대사가 떠올랐습니다. 친구란, 오래두고 가까이 사귄 벗이라는
것. 남녀 사이엔 정말로 이런 사이가 존재할 수 없는 걸까요?
아는 오빠는 늘 타이밍을 노리고 있을 수 있다?
뭐, 존재할
수는 있을 겁니다. 실제로 그런 친구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꽤 봤구요.
사실 이 논쟁은 지극히 소모적인 겁니다. 개인이 가진 기호의 문제일 뿐이니까요.
마치 크림파스타가 토마토파스타보다 맛있느냐 없느냐. 생일엔 케이크를
꼭 먹어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와 비슷한 거에요.
삶에서 이성이란 존재를 대하는 태도가 개인차가 있을
뿐입니다. 누군가는 모든 이성에 대한 경계를 할 수 있고, 다른
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. 문제는 이겁니다.
- 연인이 싫어하는데도 굳이 자신의 기호를 지나치게 적용시켜야 하는가?
- 존재 ‘할 수 있느냐 없느냐’의 문제가 아닌, 존재 ‘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’의 문제.
자, 그럼
이 문제는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?
다음 시간에 이어서 알아보도록 하죠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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